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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CTO

스타트업에 CTO가 정말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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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O 명함의 무게

"우리 회사 CTO입니다."

이러면서 명함을 건넨다고 해도 아쉽지만 상대방의 눈빛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초기 스타트업에서 CTO라는 타이틀은 생각보다 가볍습니다. 3명짜리 팀에서 개발자 1명에게 CTO 명함을 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요. 문제는 그 타이틀이 실제로 필요한 역할과 책임을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8년 전 저희 팀이 시작했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공동창업자로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CTO 타이틀을 받았지만, 당시 제가 한 일은 CTO라기보다는 '유일한 개발자'에 가까웠습니다. 아키텍처 설계, 코딩, 배포, 서버 관리, 심지어 와이파이 고장까지 모두 제 몫이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스타트업에 정말 필요한 건 CTO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그 순간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적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단계별로 다른 기술 리더십의 모습

Seed 단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초기 스타트업에 필요한 건 거창한 기술 전략이 아닙니다.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피벗할 수 있는 실행력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CTO보다 '만들 수 있는 개발자'가 훨씬 중요합니다.

 

기술 공동창업자가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제품에 대한 오너십을 가지고, 비즈니스 목표를 이해하며, 밤새워 코딩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꼭 CTO라는 타이틀을 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개발 리드' 정도의 유연한 포지션이 나중을 위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비개발 창업자 두 명이 외주로 MVP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유효한 전략입니다.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찾기 전까지는 기술 부채를 걱정할 단계가 아니니까요. 다만 이 경우, 인하우스 개발 조직으로 전환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Series A: 팀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첫 투자를 받고 본격적으로 개발팀을 꾸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CTO스러운' 역할이 필요해집니다. 개발자 채용, 온보딩, 코드 리뷰 프로세스, 협업 문화 정립 등 혼자 코딩할 때는 몰랐던 일들이 쏟아집니다.

 

저희 팀이 5명에서 15명으로 성장할 때가 가장 혼란스러웠습니다. 모두가 제게 질문했고, 모든 PR을 제가 리뷰해야 했으며, 채용 면접도 대부분 제가 봤습니다. 코딩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회의와 커뮤니케이션에 하루가 다 갔죠.

 

이 시기에 깨달은 건, CTO의 역할이 '최고로 코딩 잘하는 사람'에서 '좋은 팀을 만드는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기술 스택을 정하고, 아키텍처 방향을 제시하고, 개발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진짜 CTO의 일입니다.

Growth 단계: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이 필요하다

팀이 30명을 넘어가면 또 다른 전환점이 옵니다. 이제 제가 모든 코드를 볼 수도 없고, 모든 의사결정을 할 수도 없습니다. 조직을 나누고, 리드급 개발자를 육성하고, 시스템으로 품질과 속도를 관리해야 합니다.

 

기술 부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레거시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개선하고, 보안과 컴플라이언스를 챙기는 것. IPO를 준비하는 지금, 제가 하는 일의 절반 이상은 코딩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사회에 기술 로드맵을 보고하고, 다른 임원들과 리소스를 조율하고, 장기적인 기술 투자를 결정합니다.

 

이 단계에서 CTO가 없다면? 솔직히 힘듭니다. 누군가는 기술 조직 전체를 책임지고, 회사의 기술 전략을 대표해야 하니까요.

CTO 없이도 가능한 경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스타트업에 CTO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노코드/로우코드로 충분한 비즈니스: 복잡한 기술이 핵심이 아닌 서비스라면, 훌륭한 시니어 개발자 한 명이 CTO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타이틀에 대한 부담 없이 실무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기술보다 비즈니스가 핵심인 경우: 딥테크가 아닌 이상, 초기에는 기술 전략보다 비즈니스 모델 검증이 더 중요합니다. 개발 PM과 시니어 개발자 조합으로 충분히 굴러갈 수 있습니다.

 

외부 CTO 또는 고문 활용: 파트타임 CTO나 기술 고문을 두는 것도 좋은 대안입니다. 큰 그림을 그려줄 사람은 필요하지만, 풀타임일 필요는 없는 경우에 유용하죠.

잘못된 CTO가 더 위험한 이유

CTO가 없는 것보다 더 나쁜 건, 잘못된 CTO를 영입하는 것입니다.

 

타이틀에 집착하는 CTO: 실무는 안 하고 전략만 이야기하는 사람.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독입니다. 손을 더럽히지 않는 리더는 팀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스케일 경험 없는 CTO: 대기업 출신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3명 팀을 30명으로 키워본 경험과, 300명 조직에서 일한 경험은 완전히 다릅니다. 스타트업은 제한된 리소스로 최대 효율을 내야 하는 곳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못하는 CTO: 아무리 코딩을 잘해도, 비개발 팀원들과 소통하지 못하면 조직에 갈등이 생깁니다. 특히 CEO, CPO와 삼각편대를 이루지 못하면 회사 전체가 흔들립니다.

 

저도 초기에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솔루션을 고집하다가 출시를 놓친 적도 있고, 팀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아 좋은 개발자를 놓친 적도 있습니다. CTO 타이틀을 달았다고 자동으로 좋은 리더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진짜 중요한 질문들

그래서 "CTO가 필요한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들입니다:

 

우리 회사의 현재 단계에서 정말 필요한 기술적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게 풀스택 개발자인지, 팀 빌더인지, 기술 전략가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꼭 CTO 타이틀을 줘야 하는가? 타이틀은 나중에 언제든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준 타이틀을 회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CTO로 성장시킬 여력이 있는가? 잠재력 있는 시니어 개발자를 CTO로 키우는 것도 좋은 전략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시행착오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8년차의 솔직한 조언

돌이켜보면, 저도 처음부터 CTO 역할을 제대로 해낸 건 아닙니다. 팀이 성장하면서 저도 함께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배우는 중입니다.

 

스타트업에 CTO가 필요한가? 정답은 "때에 따라 다르다"입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타이틀보다 중요한 건 실제로 필요한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만들 수 있는 사람, 성장기에는 팀을 키울 수 있는 사람, 스케일 단계에서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사람. CTO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기에는 단계마다 필요한 역량이 너무 다릅니다.

 

만약 지금 CTO 영입을 고민하고 있다면, 먼저 이 질문부터 던져보세요. "우리는 지금 정확히 어떤 사람이 필요한가?" 그 답이 명확해지면, CTO가 필요한지 아닌지도 자연스럽게 보일 것입니다.


이 글은 '모두의 CTO' 시리즈의 첫 번째 글입니다. 스타트업 기술 조직과 리더십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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